불과  두세대 전만 해도 뼈를 시댁에 묻는다는 심정으로 오직 남편과 시부모의 말에 복종하면서 사는  것이 시집살이라고 여겼다. 그 당시에는 이혼이라는 것은 감히 생각하기 힘든 시대였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인내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눈감고 3년, 귀막고 3년 , 벙어리 3년이라는 표현이  그 당시의 고된 시집살이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부부들은 시부모와 한집에 살지 않거나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잡살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지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예전의 시집살이에 있을 법한 고부간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주 일어나고 있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었는데 고부간의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부모와 자식간의 끓을 수 없는 끈끈한 정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가족환경, 사회적 환경 변화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현대들어 급증하는 편모가정 환경이나, 모계중심의 가정교육과 교육기간 연장에 따른 자녀들과의 깊은 정서적 애착의 형성, 저출산에 따른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 및 의존도 향상, 그리고 거리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서로 연락이  가능한 통신환경 및 교통시설 등이  적잖게 작용하는 것 같다.

고부간의 갈등은 일반적으로 시어머니의 일상생활에 대한 지나친 개입과 통제,  성격이나 가치관 차이 때문에 생기는 의견충돌 등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정서적 애착과 며느리에 대한 질투가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며느리의 살림살이와 관련된  물건구입, 아이들 교육,  음식, 금전관리 등과 같은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간섭과 통제,  며느리의 사회생활에 대한 통제, 가족으로부터의 따돌림, 노골적인 적대 감정표현과 행동,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 등과 같은 다양한 모습들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일반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이 생길 때  갑과 을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서로 이길 수 없는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간에 있는 아들 역시 어머니를 외면할 수도 없고,  아내의 불만과 고통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해결되지 않는 고부간의 갈등은 부부 갈등으로 비화되기 십상이며 점점 해결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길 경우 밖으로 보이는 문제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리적 원인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새로 출발한 가정에 대한 노파심에서 출발한 것인지,  부모의 정서적인 애착과 불안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가치관이나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 아니면 과거의 심리적인 미해결 문제에서 출발한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요구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개입을 요청할 수 도 있다. 특히 고부간의 갈등의 해결에 있어서 남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어머니 편을 들면서 아내를 비난하거나 혹은 방관자의 역할을 할 때 갈등은 더욱 악화되기 쉽다.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남편의 이해와 공감, 그리고 정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남편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배신감과 같은 적지 않는 정신적인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 편만 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의 권위나 깊은 정서적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커다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보는 방법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가령,  부모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거나,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사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은 매우 미묘하고 해결하기가 쉽지 않는 문제중 하나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고 한쪽을 버리고 다른 쪽을 선택하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냉정한 판단과 이해가 필요하고, 서로의 인간적인 약점에 대해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며, 나아가 이미 일어난 상처에 대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  결혼을 통해서 맺어진 가족은 마치 거대한 몸과 같기 때문에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몸전체가 아플 수 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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